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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건물낯설게 보기



 

우리는 주()에 무심하다.

. . .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요소로 이 세 가지를 나란히 두지만, 우리는 놀랄 만큼 `()`에 무심하다. 한 벌의 옷을 사기 위해 색깔과 디자인부터 가슴께에 자리 잡은 조그만 로고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점심 메뉴를 선택할 때에도 고민을 거듭하지만 집에 대한 관심은 그에 미치질 못한다. 우리는 예쁜 옷과 맛있는 음식의 기준은 잘 알지만 건축물이 가진 멋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건축물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다. 샤워를 위해 옷을 벗어두기도, 다이어트를 위해 먹는 것을 참을 때도 있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건물의 틈새를 헤매게 된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의 저자인 서현 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명확하게 밝힌다. 장장 35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저 건물은 멋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답하기 위해 쓰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 건축도 그렇다.

음악에 대해 알게 될수록 더 많은 부분을 음미할 수 있고, 미술에 대한 지식을 쌓을수록 그림을 더 깊이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 건물도, 건축도 그렇다. 매일 우리가 스쳐가는 수백, 수천 개의 건물들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우리를 둘러싼 건물을 낯설게 바라보며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와 건축가의 정신을 곱씹어 보는 일. 책은 이를 위해 쓰였고, 책의 맨 뒷장을 덮고 나면 그동안 내려다보기만 하던 건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이 진국임을 알기 위해선 한 끼의 식사와 대화가 필요하듯, 건물의 멋을 알기 위해서도 시간이 요구된다. 하지만 `건축가를 불러 자리에 앉혀놓고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물을 설계하였는지 조목조목 듣거나 건축가들이 사용하는 어휘를 외거나 할 의무는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는 것은 대상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눈 하나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감상을 위한 쉽고도 간결한 해설을 들려준다. 저자는 건물에 숨겨진 의미를 하나하나 뜯어 해체하는 게 아니라, 건물을 이루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조명한다. 이와 같은 저자의 설명 방식은 땅을 고르고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에 벽돌을 쌓는, 건축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멋진 건물에 정답은 없다.

물론 저마다의 이상형이 있듯이 건물의 아름다움에도 정답이라 자신할 수 있는 기준이란 없다. 저자 또한 저 건물은 멋있는 겁니까?”라는 질문은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물의 멋을 감상하고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 때문일까, 건축물을 소개하는 저자는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권위의식일랑 진즉에 버려둔 채, `이 건축물은 제게 멋있어 보이는데, 당신에게는 어떻게 보이나요?`라고 넌지시 묻는다.

`건물을 만드는 건 어려울 지라도 보는 것은 쉽다`고 저자는 말한다. 논문과 달리 건축물은 주석과 참고문헌이 없다. 때문에 건축물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충분히 읽어 낼 수 있다. 철근과 콘크리트 너머에 감춰진 건축가의 미학을 발견하는 것. 건축물 자체에 담긴 멋과 의미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정확한 안목을 기르는 게 이 책의 시작점이자 마침표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화장법을 고수하듯, 건축가는 각자의 방식대로 건물에 점과 선과 도형을 덧붙인다. 어느 부분까지 철근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쌓을 것인가, 햇살을 담을 창은 어떤 모양으로 덧댈 것인가 하는 수많은 고민 끝에 하나의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건물은 사람을 통제한다.

때로는 건물 자체가 사람의 행동과 마음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건물에 들어서서 우리의 발부리를 잡는 것들은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드는 일종의 장치인 셈이다. 대웅전의 작은 섬돌은 조심스럽게 신을 벗어놓게 하고, 지하철 승강장의 노란 안전선 경계석은 발끝의 감촉으로 안전을 환기시킨다. 건축가는 우리가 건물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부터 어디로 발을 옮기고 어디에 시선이 닿는 지까지도 고려한다.

역으로, 건축물을 관찰하면 그 안에 담긴 사상을 추적할 수 있다. 예컨대 여의도의 조선시대의 궁궐을 닮고자 하는 국회의사당에서 군림하려는 의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성별 별로 출입문이 따로 마련된 조선 시대 사대부의 가옥은 남녀 간의 뚜렷한 위계질서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건축물을 살펴보면 그 안에 녹아든 권력구조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권위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까 건축물은 시대 문화의 산물이자 증인인 셈이다.

 

 

건축물이 모여 도시를 만든다.

나무와 나무가 모이면 숲이 되고, 건물과 건물이 모이면 도시가 된다. 건축에 대해 이야기 하던 저자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공터(-)에 주목한다. 한자 그대로 비어있는 땅인 공터는 건물로 가득 찬 도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건물을 하나라도 더 세우지 못해 안달이 난 도시에서, `아직은` 건물이 되지 않은 공터는 주민들의 통로이면서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듯, 덩그러니 놓인 공터가 그곳이 건축물로 가득한 도시라는 것을 역설한다.

 

 

건물에 움직임을 입히다

몇 십 년이건 그 자리 그대로 우뚝 서 있는 것이 건축물의 의무라고 생각하지만, 움직임의 속성을 지닌 건축물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이 부대끼며 오가는 시장이 그렇고, 부산함이 가득한 백화점이 그렇다. 어떤 목적을 위해 잠시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시 움직여야 하는 건물에 건축가는 역동성을 부여한다.

, 완충 공간을 두기 위해 건물에 움직임을 입히기도 한다. 예컨대 `경동교회`의 건축가는 거리와 교회의 입구를 분리하기 위해 도로와 등 진 모양새로 입구를 만들었다. 교회에 들어가기 위해 건물을 한 바퀴 돌아가면서 사람들은 마음을 가다듬는다. 건물은 움직이지 않지만, 그 건물을 거니는 사람들의 걸음과 마음은 움직이게 만든다. 저자는 건물 속에 숨겨진 움직임의 속성을 파악하는 것이 건축물의 멋을 음미하는 데에 있어 가장 흥미 있는 일 중 하나라고 말한다



멋지게 나이든 건물

바람과 햇빛과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건축물에게 부식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세월의 흔적과 풍파는 건축물 외벽에 자리 잡게 되는데, 어떤 건축가들은 그것을 일종의 멋으로 설계한다. 품위 있게 나이든 사람처럼, 멋지게 나이든 건물이 있다. 파주출판도시의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는 준공이 되기도 전에 이미 녹슨 외벽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애써 새 건물처럼 보이기 위해 녹을 벗겨 내거나 페인트를 덧칠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러운 녹의 색 또한 건축가의 설계이고 건물이 가진 멋이다. 곱게 늙은 신사의 주름처럼, 건물의 얼굴에도 시간이 새겨진다. 세월을 버텨낸 건물들을 요목조목 살펴보면 세월을 `버텨낸 것`이 아니라 `세월이 빚어낸` 건축물의 모습이 보인다.

 

 

풍경도 건축이다.

저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멋진 건축물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미술관 위에 놓여 있는 푸른 하늘을 묘사한다. 미술관에 다다르기도 전 진입로에서 보게 되는 자연의 풍경을 일일이 묘사하고 예찬한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속속 바뀌어나가는 경관들을 음미하면서 건축물에 다가선다.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국립현대미술관만이 가질 수 있는 풍경이다. 저자는 건물의 멋이 건축물 자체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배경을 포괄한다고 말한다. 건축물 앞에 펼쳐진 호수, 건물 어느 곳에서건 청명하게 들려오는 새소리 또한 설계의 일부분이 된다.

 

 

이제 우리의 몫이다.

책의 끝자락에서 저자는 자신이 책을 쓰게 만든 `저 건물은 멋있는 겁니까?`라는 질문을 다시 꺼낸다. 그리고 저자는 그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단호하게 말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자 스스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건축물의 멋을 감상하고 판단하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저자는 `건축이 인간의 정신을 담은 그릇임을 알리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한다. 좋은 집의 기준이 ```시세`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사회에서, 건축가의 고뇌가 스며든 건축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책의 맨 뒷장을 덮고 나면, 눈앞에 있는 저 건물은 어떤 건축가의 고뇌와 땀이 배어있을지, 지금 나를 내려다보는 있는 저 건물은 또 어떤 멋과 철학을 품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 글은 제 1회 Read Me 서평(독후감) 공모전 수상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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